원효의 해골물·맹자의 성선설·순자의 성악설 — 동서양 철학 8가지
밤에 달게 마신 물이 아침에 보니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면, 달라진 건 물일까요 나일까요? 사람이 본래 착한지 악한지를 두고 맹자와 순자가 실제로 어디서 갈리는지까지 동서양 생각을 읽어요.
답을 주는 글이 아니에요. 당연하다고 여기던 걸 한 번 흔들어 보는 자리예요.
타인의 시선
사르트르는 남이 나를 볼 때 내가 '대상'이 된다고 했어요. 열쇠구멍을 들여다보다 들킨 순간처럼요.
'타인은 지옥이다'는 사람이 싫다는 뜻이 아니에요. 남의 시선을 통해서만 나를 볼 수 있게 되는 상태가 지옥이라는 거죠. 평판을 관리하며 사는 삶이 왜 피곤한지에 대한 오래된 설명이에요.
남의 눈으로만 나를 보면 그게 지옥이다.
원효의 해골물
밤에 마신 물이 달았는데 아침에 보니 해골에 고인 물이었어요. 원효는 여기서 돌아섰어요.
달라진 건 물이 아니라 앎이에요. 마음이 짓는다는 말이 관념론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같은 사실도 아는 순간 다른 것이 된다'는 아주 구체적인 관찰이에요.
달라진 건 물이 아니라 아는 것이었다.
측은지심
맹자는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걸 보면 누구나 가슴이 철렁한다고 했어요. 계산 전에 먼저 움직이는 그 마음이 도덕의 씨앗이라는 거죠.
칭찬을 바라서도, 손가락질이 무서워서도 아니에요. 그래서 맹자는 성선을 주장하되 '이미 착하다'가 아니라 '씨앗이 있다'고 말해요. 씨앗은 안 기르면 죽습니다.
먼저 움직이는 마음이 도덕의 씨앗이다.
성악과 스승
순자는 사람의 본성이 악하다고 봤어요. 그래서 더 절실하게 교육과 예를 말했죠.
성악설은 인간 혐오가 아니에요. 저절로 좋아지지 않으니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에요. 맹자와 순자는 결론이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서 갈립니다.
저절로 되지 않으니 만들어야 한다.
정명
공자는 정치의 시작이 이름을 바로잡는 것이라 했어요.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다워야 한다고요.
말이 자리를 잃으면 일이 어긋나요. 회의라 부르지만 통보인 자리, 협의라 쓰지만 지시인 문서. 이름이 흐려지면 책임도 함께 흐려집니다.
이름이 흐려지면 책임도 흐려진다.
무아
붓다는 변하지 않는 '나'를 찾을 수 없다고 했어요. 몸도 느낌도 생각도 계속 바뀌니까요.
허무한 얘기로 들리지만 방향이 반대예요. 고정된 내가 없다는 건 지금의 내가 끝이 아니라는 뜻이거든요. 바뀔 수 있다는 말과 같은 자리에 있는 주장이에요.
고정된 내가 없다는 건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스피노자의 신
스피노자에게 신은 자연 그 자체예요. 세상 밖에서 세상을 만든 존재가 아니라요.
그래서 기적도 없고 목적도 없어요. 대신 모든 것이 필연으로 이어져요. 이 결론 때문에 그는 공동체에서 파문당했고, 렌즈를 깎으며 조용히 살았어요.
이해하는 만큼 자유로워진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
몽테뉴는 자기 서재 들보에 'Que sais-je?' — 나는 무엇을 아는가를 새겨 뒀어요.
이건 지식을 포기하는 말이 아니라 확신을 미루는 말이에요. 몽테뉴의 에세는 결론을 내리는 글이 아니라 생각이 움직이는 걸 그대로 보여주는 글이죠. 그래서 지금 읽어도 안 낡아요.
확신을 미루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