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 33초·오케스트라는 왜 오보에로 음을 맞추나 — 음악 뒤 이야기

공연 전 모든 악기가 오보에 소리에 맞춰 음을 고르는 장면, 본 적 있죠? 왜 하필 오보에인지부터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는 곡이 무엇을 들려주는지까지 무대 뒤 사연을 모았어요.

곡은 아는데 사연은 모르던 것들이에요. 알고 들으면 다르게 들려요.

오케스트라의 A

연주 전 오보에가 A음을 불고 모두가 거기 맞춰요. 왜 하필 오보에일까요.

음정이 잘 안 변하고 소리가 잘 뚫려서예요. 그리고 기준 A의 높이는 시대마다 달랐어요 — 바로크는 415Hz 근처, 지금은 440~443Hz. 우리가 듣는 옛 음악은 옛 사람이 듣던 것보다 높습니다.

기준음조차 시대마다 달랐다.

지휘자의 등장

지휘자가 지금처럼 앞에 서서 지휘한 건 19세기부터예요. 그전엔 제1바이올린이나 건반 주자가 이끌었죠.

악단이 커지고 곡이 복잡해지면서 오로지 조율만 하는 자리가 필요해졌어요. 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이 소리를 만든다는 게 이 직업의 이상한 점이에요.

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이 소리를 만든다.

파가니니의 손

너무 잘 쳐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교회가 장례를 미룰 만큼요.

지금은 그가 마르판 증후군이었을 가능성이 거론돼요. 관절이 유난히 유연했다는 거죠. 다만 어디까지나 추정이고, 확실한 건 그가 연습을 어마어마하게 했다는 사실이에요.

설명할 수 없는 것에 사람들은 이야기를 붙인다.

4분 33초

존 케이지의 이 곡은 연주자가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아요. 4분 33초 동안요.

그동안 들리는 기침, 옷 스치는 소리, 바깥 소음이 곡이에요. 침묵은 없다는 걸 증명하려고 만든 작품이죠. 무향실에 들어갔을 때도 자기 신경과 혈액 소리가 들렸다는 경험에서 출발했어요.

완전한 침묵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람회의 그림

무소륵스키가 친구의 유작 전시를 보고 쓴 피아노곡이에요. 그림 사이를 걷는 '프롬나드'가 곡을 잇죠.

지금 더 자주 들리는 건 라벨의 관현악 편곡이에요. 원곡은 피아노 한 대인데 말이죠. 편곡이 원곡보다 유명해진 또 하나의 사례예요.

그림 사이를 걷는 걸음도 음악이 된다.

볼가 강의 뱃노래

일하며 부르던 노래예요. 무거운 것을 여럿이 함께 당길 때 박자가 필요했거든요.

노동요는 낭만이 아니라 기술이에요. 같이 힘을 주는 순간을 맞추는 장치죠. 세계 어디에나 있는 이 형식이 리듬의 가장 오래된 쓸모예요.

리듬의 첫 쓸모는 함께 힘주기였다.

판소리의 추임새

관객이 '얼씨구' 하고 끼어들어요. 방해가 아니라 구성의 일부예요.

서양 무대가 관객을 조용히 시키는 방향으로 갔다면 판소리는 반대로 갔어요. 듣는 사람이 소리를 보태는 구조죠.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처음부터 흐렸어요.

듣는 사람이 소리를 보태는 형식.

아리랑

지역마다 다른 아리랑이 있어요. 정선, 밀양, 진도. 같은 이름인데 선율도 정서도 달라요.

'아리랑'이 무슨 뜻인지도 정설이 없어요. 뜻을 모르는 채로 가장 많이 불린 노래인 셈이죠. 노래가 뜻으로만 남는 게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해요.

뜻을 몰라도 가장 많이 불린 노래.

브루니가 적어요

색을 바꾸며 숨는 카멜레온이에요. 개발 글 사이사이에 철학·음악·그림·성경 구절 이야기도 한 편씩 적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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