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제전 초연은 정말 폭동이었을까 · G선상의 아리아 · 골드베르크 변주곡

공연장 폭동으로 유명한 봄의 제전 초연, 실제로는 몸싸움이 있었다는 근거가 없어요. 명곡에 붙은 일화가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부터 과장인지 당시 기록으로 하나씩 짚어 봐요.

곡은 아는데 사연은 모르던 것들이에요. 알고 들으면 다르게 들려요.

G선상의 아리아

바흐가 붙인 제목이 아닙니다. 100여 년 뒤 바이올리니스트 빌헬미가 바이올린의 가장 낮은 G선 하나로만 연주하도록 편곡하며 붙은 이름입니다. 제약 하나가 곡의 정체성이 된 경우입니다.

바흐의 원곡은 G선만 쓰지 않아요. 19세기 바이올리니스트가 G선 하나로 연주하도록 편곡하면서 저 이름이 붙었죠. 지금 우리가 아는 형태는 편곡자의 것이에요.

우리가 아는 명곡의 절반은 편곡이다.

백조의 호수

지금은 발레의 대명사지만 1877년 초연은 실패로 평가받았습니다. 차이콥스키가 죽은 뒤 다시 안무된 공연이 성공하면서 걸작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는 이 곡의 성공을 끝내 보지 못했습니다.

초연은 실패였어요. 안무도 지휘도 좋지 않았죠. 차이콥스키가 죽은 뒤 프티파와 이바노프가 다시 안무한 판이 지금의 백조의 호수예요.

실패한 초연이 끝은 아니다.

헨델의 메시아

할렐루야 합창이 담긴 이 대작을 헨델은 약 3주 만에 썼습니다. 파산 직전의 실패한 흥행사였던 그는 이 곡으로 다시 일어섰고, 더블린 초연의 수익은 자선으로 기부되었습니다.

24일 만에 완성했다고 전해져요. 관객이 '할렐루야'에서 일어서는 관습은 국왕이 일어섰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확실한 기록은 없어요.

전설이 붙는 곡은 이미 사랑받은 곡이다.

사티의 짐노페디

사티는 가구처럼 방에 놓이는 음악을 꿈꿨던 괴짜였습니다. 배경이 되기를 자처한 음악이라는 생각은 당시엔 조롱받았지만, 오늘의 플레이리스트와 로파이 문화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사티는 '가구 음악'이라는 말을 만들었어요. 듣지 않아도 되는, 공간에 놓이는 음악이죠. 100년 뒤의 앰비언트가 여기서 시작돼요.

듣지 않아도 되는 음악을 처음 만든 사람.

봄의 제전 초연

1913년 파리. 관객이 야유하고 소란이 일었어요. '폭동'으로 전해지는 그 밤이에요.

다만 과장이 섞였어요. 실제로 몸싸움이 있었다거나 경찰이 왔다는 근거는 없고, 당시 기사도 '파리가 새 발레에 야유했다' 정도였죠. 그리고 소란의 원인은 음악보다 니진스키의 안무였다는 견해가 유력해요. 1년 뒤 연주회 형태로는 호평받았고요.

전설이 커질수록 그날의 실제는 작아진다.

녹턴

밤의 음악이라는 뜻이에요. 존 필드가 만든 형식을 쇼팽이 이어받아 완성했죠.

왼손이 넓게 화음을 펼치고 오른손이 노래해요. 성악의 선율을 피아노에 옮긴 셈이죠. 쇼팽이 사람 목소리를 얼마나 오래 들었는지가 여기서 드러나요.

피아노에게 노래를 가르친 형식.

사라방드

본래는 금지될 만큼 격했던 춤이었어요. 유럽에 들어오며 느리고 장중한 형태로 바뀌었죠.

헨델의 사라반드는 지금도 영화에 자주 쓰여요. 원래 뜨거웠던 춤이 식으면서 오히려 더 무거워진, 흔치 않은 경우예요.

뜨거웠던 것이 식으면 무거워진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불면증에 시달리던 백작을 위해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다만 근거는 약해요.

아리아 하나에 변주 30개, 그리고 다시 처음 아리아로 돌아와요. 30번을 지나온 뒤 듣는 같은 아리아는 처음의 그것이 아니에요. 곡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달라져 있죠.

돌아온 자리가 같아도 나는 달라져 있다.

브루니가 적어요

색을 바꾸며 숨는 카멜레온이에요. 개발 글 사이사이에 철학·음악·그림·성경 구절 이야기도 한 편씩 적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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