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옷엔 왜 쓸 만한 주머니가 없을까
여자 옷에는 왜 쓸 만한 주머니가 없을까? 하녀가 채워 줘서 단추가 왼쪽이라는 말도 흔히 듣지만, 그 설명은 생각보다 근거가 약하다.
여자 옷 단추가 왜 왼쪽이냐고 물으면 대개 비슷한 답이 돌아온다. 옛날엔 하녀가 채워 줬으니까. 그럴듯하다.
그런데 19세기 이전 여성복에는 단추부터가 거의 없었다. 이 얘기는 조금 뒤에 다시 꺼내겠다. 옷에는 이렇게 그럴듯한 유래가 유난히 많이 붙어 있다.
미니스커트
1960년대 런던, 메리 퀀트가 치마를 과감하게 잘랐다. 그런데 '미니'라는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는 두 가지로 전해진다. 퀀트 자신은 사랑하던 차 미니에서 따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기 가게 앞 거리 이름을 따서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도 지금까지 논쟁거리다.
이상할 것도 없다. 옷 길이 하나가 한 세대의 독립 선언이 된 드문 경우니까. 누가 처음인지 모를 만큼, 시대가 먼저 원했던 옷이다.
폴로셔츠
테니스 선수 르네 라코스테(라코스트라고도 적는다) 이야기다. 뻣뻣한 정장 셔츠, 그것도 긴팔을 입고 공을 치려니 답답했다. 그래서 소매를 자르고 옷깃만 남긴 부드러운 피케 셔츠를 만들어 입고 코트에 나섰다. 별명이 악어라서 가슴엔 악어를 수놓았다.
이름은 좀 엉뚱하다. 폴로 경기에서 먼저 입어서 '폴로'셔츠가 됐다고 한다. 어쨌든 불편을 못 참은 선수 하나가 운동복을 격식의 옷장 안까지 들여놓은 셈이다.
후드티
폴로셔츠가 코트에서 나왔다면 후드티는 냉동창고에서 나왔다. 시작은 1930년대 뉴욕, 냉동창고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위해 미국 챔피언사가 만든 방한복이다. 운동선수가 입고, 힙합이 입고, 실리콘밸리까지 건너간 건 훨씬 뒤의 일이다.
노동복이 반세기마다 새 주인을 만났다. 작업복으로 태어나 저항의 옷 소리까지 들었으니, 팔자가 꽤 기구하다.
버킷햇
이것도 일하던 사람들의 모자다. 아일랜드 농부와 어부들이 쓰던 챙 좁은 모자인데, 비를 흘려보낼 챙이 있어야 했고 접어서 주머니에 넣어도 상하지 않아야 했다.
그 실용성 덕에 군모가 됐다. 그다음엔 힙합과 스트리트의 아이콘으로 넘어왔다. 필요가 만든 모양이 결국 유행이 된다.
여성복 단추가 왼쪽인 이유
처음 얘기로 돌아가 보자. 하녀가 채워 주기 편해서라는 설명, 정말 흔하다. 그런데 근거가 약하다.
19세기 이전 여성복에는 단추가 거의 없었다. 끈과 고리를 썼다. 좌우가 갈린 건 남성복이 군복 생산으로 규격화된 뒤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
그럴듯한 설명일수록 한 번쯤 의심해 볼 만하다. 듣기 좋은 유래가 근거까지 튼튼한 경우는 의외로 드물다.
여성복에 주머니가 없는 이유
주머니에도 꼬인 사정이 있다. 17세기엔 남성복에만 주머니를 꿰맸다. 여자들은 허리에 매다는 주머니를 따로 찼다.
18세기 들어 실루엣이 날씬해지자 그 주머니가 옷 선을 망쳤다. 결국 주머니는 사라졌고, 그 자리에 작은 손가방이 나타났다. 지금의 핸드백이 거기서 시작됐다.
가방이 생겨서 주머니가 없어진 게 아니다. 순서가 반대다.
주머니가 사라진 자리에 가방이 생겼다.
코르셋의 오해
코르셋 하면 숨도 못 쉬고 갈비뼈가 부러졌다는 이야기부터 떠오른다. 대부분 과장이다.
극단적인 사례가 없진 않았다. 하지만 다수에게는 지금의 브래지어 같은 일상 속옷이었다. 빅토리아 시대를 야만으로 그리는 서사가 이 과장을 키웠다.
옛사람을 어리석게 그리는 이야기는, 들여다보면 대개 우리 얘기다. 그런 이야기일수록 한 번 더 의심해 봐야 한다.
검정이 비쌌던 시절
지금은 제일 무난한 색이 검정이다. 그런데 짙고 바래지 않는 검정을 내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검정은 오랫동안 부의 색이었다.
16세기 스페인 궁정은 검정을 권력의 색으로 썼다. 누구나 입게 된 건 값싼 합성염료가 나온 19세기의 일이다. 지금 검정이 기본색인 건 화학 덕분이다.
지금의 기본색은 한때 가장 비싼 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