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퍼는 특허를 받고도 30년 넘게 안 팔렸다

지퍼는 1893년에 특허가 났는데도 30년 넘게 거의 팔리지 않았다. 자꾸 벌어지고 녹슬었으니까. 옷장 속 물건에는 이렇게 전쟁과 우연이 끼어든 사연이 많다.

1893년에 특허가 난 발명품이 있다. 그런데 그 뒤로 30년 넘게 거의 안 팔렸다. 지금은 하루에도 몇 번씩 올렸다 내렸다 하는 물건인데.

답은 지퍼다. 옷장 속 물건들은 이런 사정을 하나씩 품고 있다. 전쟁이 끼어든 경우가 특히 많다.

보라의 몰락

보라는 원래 조개에서 뽑던 색이다. 1g 을 얻는 데 수천 마리가 들었다. 황제의 색이 될 수밖에 없었다.

1856년, 열여덟 살 퍼킨이 실험에 실패하던 중에 우연히 합성 보라를 만든다. 몇 년 만에 보라는 누구나 입는 색이 됐다. 색의 위계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그것도 실패한 실험 하나 때문에.

기성복의 탄생

옷은 원래 맞춰 지어 입는 것이었다. 그게 바뀐 계기가 전쟁이다. 남북전쟁 때 군복을 대량으로 만들어야 했고, 그러면서 치수 체계가 생겼다.

그때 모은 신체 치수 통계가 기성복의 바탕이 됐다. 전쟁이 옷의 산업화를 앞당긴 셈이다. 매장에서 S, M, L 중 하나를 집어 드는 그 방식도 뿌리를 따라가면 군복이 나온다.

치수라는 개념 자체가 거기서 왔다.

지퍼가 자리 잡기까지

1893년에 특허가 났지만 30년 넘게 안 팔렸다. 자꾸 벌어지고 녹슬었으니 그럴 만했다.

1920년대에 굿리치가 덧신에 달면서 zipper 라는 이름이 붙었다. 남성 바지에 들어간 건 1930년대다. 좋은 발명이라고 곧바로 퍼지진 않는다. 대개는 쓸 자리를 찾는 데 더 오래 걸린다.

발명보다 쓸 자리를 찾는 게 더 오래 걸린다.

나일론의 등장

1939년 세계박람회에서 공개됐고, 이듬해 스타킹이 팔리기 시작했다. 첫날에만 수백만 켤레가 나갔다.

그런데 곧 전쟁이 터졌고, 나일론은 낙하산과 로프로 끌려갔다. 가게에서 스타킹이 사라졌다. 여성들은 다리에 선을 그려서 스타킹을 신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고 한다. 이 대목은 좀 웃기면서도 짠하다. 물자가 없으면 흉내가 유행이 된다.

뉴룩

전쟁 얘기는 1947년까지 이어진다. 디올이 허리를 조이고 치마를 크게 펼친 옷을 내놨다. 천이 아주 많이 들어간 옷이었다.

배급 시대가 막 끝난 전쟁 직후라 사치라는 비난이 컸다. 그런데 그게 바로 인기의 이유이기도 했다. 이제 다시 넉넉해져도 된다는 신호였으니까.

옷은 시대가 무엇을 갈망하는지 먼저 말한다.

리틀 블랙 드레스 이후의 샤넬

샤넬은 코르셋을 벗겨 냈고, 저지 원단을 옷으로 끌어왔다. 저지는 원래 속옷 감이었다.

값싸고 잘 늘어나는 천을 정장에 쓴다는 건 당시엔 파격이었다. 재료에도 위계가 있었는데 그걸 흔들었다. 지금은 명품이 됐지만 출발은 '편하게 움직이는 몸'이었다. 속옷 감을 겉옷으로 올린 데서 시작한 브랜드다.

정장 깃의 구멍

재킷 깃에 작은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 꽃을 꽂는 자리다. 지금은 대부분 장식이고.

깃을 세워 단추를 잠그던 흔적이라는 설도 있다. 어느 쪽이든 지금은 쓰지 않는 기능의 화석이다. 정장은 이런 화석이 유난히 많은 옷이다.

소매 단추

화석이 하나 더 있다. 재킷 소매 끝 단추는 대개 풀리지 않는다. 그런데 왜 달려 있을까.

군의관이 소매를 걷기 쉽게 하려고 달았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근거는 약하다. 확실한 건 두 가지다. 맞춤 정장에서는 실제로 풀린다는 것, 그리고 그게 '맞춤'의 표시로 쓰인다는 것.

쓸모가 사라지면 표식이 된다.

브루니가 적는다

색을 바꾸며 숨는 카멜레온이다. 개발 글 사이사이에 철학·음악·옷·그림·성경 구절 이야기도 한 편씩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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